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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박물관, 제1기 박물관대학 인문학 강의 성료울릉군 독도박물관은 지난 5일 북면 주민자치센터 2층에서 ‘제1기 독도박물관대학 인문학 강의’ 프로그램을 성황리에 종료함과 동시에 수료식을 가졌다. 이번 강의는 역사학·문화인류학·민속학 등 다양한 인문학 분야의 내용으로 구성되었으며, 지난 5월 17일에 시작하여 매주 수요일에 각각의 주제에 따라 총 8회차 강의를 진행했다. 독도박물관은 향후에도 다양한 인문학 강의를 기획 및 운영하여 지역주민의 문화향유와 평생교육의 기회를 확대하는데 노력할 것이며, 하반기 박물관대학은 오는 9월부터 진행될 예정이다. 남한권 울릉군수는 “이번 강의가 지역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며“박물관대학 프로그램의 활성화로 지역민 문화생활의 저변을 계속 확대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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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교계, 3.1운동 104주년 맞아 세미나 개최예장통합 포항노회(노회장 조현문 목사) 역사위원회(위원장 이남재 목사)는 2월 28일 기쁨의교회(담임목사 박진석)에서 포항 3.1운동 세미나를 개최했다. 지역 기독교인들의 역사 인식을 높이기 위하고자 마련된 이번 행사는 이날 세미나를 시작으로 3.1운동 관련 교회(포항소망교회, 대전교회) 탐방에 이어 3월 1일 대전교회(담임목사 성희경)에서 3.1절 기념행사 및 역사유물 지정식 참석 등으로 진행됐다. 이날 세미나에는 ‘포항 3.1운동사’, ‘포항독립운동사’ 등을 집필한 향토역사학자 이상준 선생이 강사로 나섰다. 이상준 선생은 “당시 포항은 일본인들이 사실상 지배하던 곳이었다”며 “포항교회(현 포항제일교회)와 사립영흥학교가 세워지면서 독립운동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선생은 “대구 시위에 참여했던 포항, 영일지역민들이 3월 11일 포항면에서 만세시위를 벌였고, 이 시위를 시작으로 지역 전체로 번졌다”면서 3.1운동 당시의 포항지역 시위 전개에 대해 설명했다. 역사위원장 이남재 목사는 인사말에서 “포항지역 독립운동사에서 교회와 기독교인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했다”며 “이번 세미나가 역사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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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봉화 옥방교회 창립70주년 기념, 마을 역사전시회 개최사진과 기록으로 보는 옥방의 광산, 마을, 교회 이야기 ▲역사전시회를 마치고 옥방교회 교우들과 함께 기념 촬영. 옥방 주민들로 구성된 마을 공동체 ‘옥방에 살어리랏다’는 10월 17일~31일까지 옥방교회 선교관에 특별히 마련된 전시관에서 ‘광산, 마을, 교회’라는 주제로 기록물과 사진으로 보는 마을 역사전시회를 개최했다. 역사전시회는 흔히 찾아볼 수 있지만 마을 단위에서 진행하는 역사전시회는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옥방 마을의 경우, 옥방교회의 전임 천정명 목사를 중심으로 교인들이 폐허가 된 광산의 시설물들 속에서 버려진 광산 관련 자료들을 확보했고, 교회가 마을에 관련된 역사자료들을 잘 보관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더불어 8년 전, 귀촌하여 춘양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규환 교수(봉화 지역사 연구소, 역사학자)가 함께하여 자료를 분석하고 정리하여 적극적으로 협력한 끝에 의미 있는 전시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 ‘옥방에 살어리랏다’는 회장 변광오, 총무 박현기(옥방교회의 담임목사)를 비롯해 마을 주민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변화하는 시대와 농촌 환경, 인구 감소 등의 문제에 함께 머리를 맞대고 마을 재생을 위해 노력하자는 데 뜻을 같이해 모이게 되었다. 역사전시회는 광산, 마을, 교회 등 3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약 100년 전, 광맥의 발견으로 시작되었던 옥방은 대한민국 5대 중석 광산으로 중석은 1952년 대한민국 수출총액의 68%를 차지할 정도로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수출품이었다. 광산이 활기를 가짐과 동시에 광산 주변으로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는데 작은 마을 옥방에 무려 1,200세대가 모여 살았고, 두 개의 국민학교와 한 개의 중학교가 운영될 정도로 아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광산의 폐광으로 마을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다행히 교회와 마을 주민들의 협력으로 친환경 유기농 농업을 받아들여 현재는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은 마을이 되었지만, 여전히 인구 감소로 인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전시회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마을 주민들과 지역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지인들, 그리고 몇몇 기관에서도 방문하여 자칫 타인의 옛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옥방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신들의 이야기로 공감하며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는 기회로 삼을 수 있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뜻밖에 얻은 수확이 있다면, 역사는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과 미래를 풍요롭게 하는 힘을 가진 모두가 공유하는 아름다운 추억이라는 것이다. 옥방교회 담임 박현기 목사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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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을 강타한 ‘칠곡할매글꼴’ 열풍한컴 오피스에도 정식 탑재 ▲칠곡군은 '칠곡할매글꼴' 홍보에 열정을 쏟고 있다. (사진=칠곡군 제공) “지역민으로서 칠곡할매글꼴을 쓸 수 있어 너무 자랑스럽고 뿌듯합니다.” 칠곡군에서 시작된 칠곡할매글꼴 열풍이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특히, 지역민들이 앞장서 글꼴을 알리고 있어 의미를 더하고 있다. 27일 왜관읍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신혜경(39·네네치킨) 씨는 “정성껏 요리한 음식을 배달하기 전에 고객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칠곡할매글꼴로 작성한 감사의 글을 상자에 붙인다”며 “다른 글꼴보다 칠곡할매글꼴이 진심어린 마음을 전달하기 좋으며, 작성하고부터는 매출액도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같은 지역에서 칠곡할매글꼴로 만든 비닐봉투로 음식을 배달하는 김인숙(54·개미분식) 씨는 “독특한 글씨체라 고객들이 한 번 더 유심히 살펴본다”면서 “지역의 글꼴을 가짐으로 지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낀다”고 전했다. 칠곡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성인문해교육을 통해 뒤늦게 한글을 깨친 할머니 400분 중 개성이 강한 글씨체를 선정해 글꼴로 제작했다. 글꼴은 글씨체 원작자의 이름을 딴 △칠곡할매 권안자체 △칠곡할매 이원순체 △칠곡할매 추유을체 △칠곡할매 김영분체 △칠곡할매 이종희체 등 5가지다. 이러한 글씨체는 로얄사거리, 회전교차로 등의 칠곡군 주요 거리에 설치된 현수막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지역 내에서 다양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비단 군민들뿐만 아니라 칠곡군 공직자들도 할매글꼴 홍보에 열정을 쏟고 있다. 백선기 칠곡군수는 칠곡할머니 글씨체로 제작한 다섯 종류의 명함을 사용하며 글꼴 홍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또한, 칠곡군 공직자들이 내미는 명함 역시 삐뚤빼뚤한 칠곡할머니 글씨체로 제작했다. 칠곡할매글꼴은 지역 내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퍼지고 있다. 한글사랑운동을 펼쳐온 방송인 출신 역사학자 정재환 성균관대 교수가 칠곡할매글꼴 홍보 대사로 나서면서 더욱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경주 황리단길에는 칠곡할매글꼴로 제작한 대형 글판이 내걸리고 ㈜한글과컴퓨터는 한컴오피스 프로그램에 칠곡할매글꼴을 정식 탑재했다. 이와 함께 국내 최초의 한글 전용 박물관은 칠곡할매글꼴로 제작한 표구를 상설 전시해 관광객을 눈길을 끌고 있다. 귀신잡는 해병들도 칠곡할매글꼴에 매료됐다. 해병대교육훈련단이 위치한 포항시 오천읍에는 칠곡할매글꼴로 제작한 입대 환영 플랜카드가 내걸렸다.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듯 국립한글박물관은 최근 칠곡할매글꼴로 제작한 표구와 글꼴이 담긴 USB를 유물로 지정하고 영구보전하기로 했다. 심동섭 국립한글박물관장은 “칠곡할매글꼴은 정규 한글교육을 받지 못한 마지막 세대가 남긴 문화유산으로 한글이 걸어온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새 역사를 쓴 것”이라고 밝혔다 백선기 군수는 “칠곡할매글꼴은 특별한 의미와 개성으로 한글 사용자들에게 또 다른 기쁨과 만족을 줄 것”이라며 “칠곡할머니들의 굴곡진 삶과 애환이 담겨 있는 칠곡할매글꼴을 많이 사랑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예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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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 새마을운동 50주년 기념 ‘청년 톡톡 토크콘서트’ 개최미래세대의 주역 청년들에게 말하고!! 청년들에게 듣는다!! ▲'청년톡톡 토크콘서트'에 참여한 이철우 도지사(우)와 가나 출신 방송인 샘 오취리.(사진=경북도청 제공) 경상북도는 24일(금) 경북도청 동락관에서 새마을운동 50주년을 맞아 지역의 청년·대학생들과 함께 소통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청년톡톡 토크콘서트’를 개최했다. 이번 토크콘서트는 청년들의 새마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새마을에 대해 알아가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행사는 인기MC 김현욱 씨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1부 청년톡톡 토크콘서트, 인기가수의 문화공연, 그리고 2부 유명 역사학자 최태성 선생님의 강연과 토론으로 진행됐다. 이날 토크콘서트에는 영남대학교 박정희새마을대학원에 재학 중인 22개국 대학원생 및 새마을국제개발학과 학생, 시·군 청년 새마을지도자 및 Y-SMU 포럼 회원, 새마을세계화재단 글로벌 청년지도자, 새마을해외봉사단 및 도청 청년직원 등 200여 명이 함께 했다. 1부 ‘청년톡톡 토크콘서트’에서는 이철우 경상북도지사와 역사학자 최태성, 가나 출신 방송인 샘 오취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생이 참여했다. 50주년을 맞은 새마을운동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청년들이 생각하는 새마을운동은 무엇인지, 그리고 현재 청년들의 취업, 진로, 결혼 등에 대한 고민과 다양한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생인 가봉 출신 시메레즈이든씨가 패널로 참여해 외국 유학생의 관점에서 바라본 새마을운동에 대한 생각과 한국생활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2부에서는 유명 역사학자 최태성 선생님의 강연이 이어졌다. 새마을 전문가가 아닌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새마을운동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에 대해 강의를 하고 참가자들과 특강에 관한 토론을 펼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이철우 경상북도지사는 “과거 새마을운동이 어려운 시절을 극복하는 계기가 된 것처럼, 우리 청년들도 코로나19 등 현재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지만 새마을 정신을 통해서 잘 이겨내자”고 말하고, “도지사로서 경북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켜, 일자리가 있고 청년이 행복한 경북을 만들어 나가는 데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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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하양 육영재’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1823년 창건된 지방교육기관, 경상북도 기념물 제179호로 지정 ▲경산 하양 육영재의 현판.(사진=경산시 제공) 경산시(시장 최영조)는 경산시 하양읍 동서리에 있는 하양 육영재(育英齋)가 13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179호로 지정되었다고 밝혔다. 경산 하양 육영재는 조선 순조 23년(1823년)에 하양현감 이태승(李台升)이 하양지역 유림 허장(許樟), 김이덕(金履德), 채석이(蔡碩履) 등과 함께 하양현 선비들을 양성하기 위해 지역민의 부조 및 원납금으로 건립한 양사재(養士齋, 선비를 양성하는 지방교육기관)이다. 육영재는 경상북도에 조선 후기 양사재가 거의 남지 않은 상태에서, 민관이 함께 창건하고 현재까지 그 구조가 큰 변화 없이 남아있어, 고건축적 가치를 넘어 역사학·교육사·사회사 연구에도 중요 자료로 평가돼 문화재로 지정됐다. 또한 <육영재기(育英齋記)>, <육영재 상량문(育英齋上樑文)>, <육영재 중수기(育英齋重修記)>, <모성재기(慕聖齋記)> 등 현존하는 관련 자료를 통해 창건과 변화 그리고 운영 실태를 함께 살펴볼 수 있어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오세근 문화관광과장은 “이번에 도문화재로 지정된 경산 하양 육영재를 포함한 우리시 문화재에 대해 지속적·체계적으로 관리 보존하면서, 앞으로도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지역의 문화유산을 찾아 지정 신청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이번에 육영재가 경상북도 문화재(기념물)로 지정되면서 경산은 국가지정문화재 15건, 도지정문화재 27건, 등록문화재 1건 등 모두 43건의 문화재를 보유하게 되었다. ▲경상북도 기념물 179호로 지정된 경산 하양 육영재의 모습.(사진=경산시 제공) 경산 최점식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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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평생 경안노회를 떠나지 않은 주의 종(從), 임학수 목사(8)일평생 경안노회를 떠나지 않은 주의 종(從), 임학수 목사(8) 김승학 목사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안동교회 담임목사 임학수 목사 (林鶴洙, 1884-1969) 목차 서론 1. 임학수, 믿음의 조상이 되다 …………………………… 16. 지역의 중심(中心) 교회를 섬기다 17. 창씨개명(創氏改名)을 하지 않다 18. 최고의 한학자(漢學者)가 되다 19. 은퇴 후에도 목회를 계속하다 20. 후학을 위해 매진하다 결론 20. 후학(後學)을 위해 매진하다 예천교회를 마지막으로 공식적으로 은퇴한 임학수 목사는 안동 지역의 작은 교회들을 섬기고 돌보았을 뿐 아니라 후학을 양성하는 사역에도 매진했다. 그는 은퇴 후에도 수년간 경안신학원 전신인 경안고등성경학교에서 성경과 한문을 가르쳤다. 임학수 목사로부터 여호수아서를 배웠던 경안노회 은퇴목사 권영택 목사는 많은 연구에 기초한 임 목사의 강의는 역사학자처럼 전후 맥락을 잘 연결시켜 여호수아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고 증언한다. 더욱이 임학수 목사가 언제나 제자들에게 존댓말을 썼으며, 제자들을 나무라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았을 정도로 고매한 인격을 갖춘 선비로 권영택 목사는 임 목사를 기억한다. 역시 제자인 장세문 목사는 임 목사가 말년에 한문을 가르쳤는데, 언제나 흐트러짐 없는 정갈한 모습이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77세 할아버지 목사님이 칠판에 반듯반듯 정자체로 한자를 한 자 한 자 쓰실 때엔 양복저고리 왼쪽 어깨가 밑으로 축 처져 있어서 쓰시기를 마친 목사님은 학생들 쪽으로 돌아서시면서 저고리를 바로 입으시곤 하셨다.” 임 목사가 사랑하고 가르친 경안신학원은 1912년 여자성경학원으로부터 시작했다. 선교사들은 앞으로 지역교회를 지도해 갈 여성 지도자를 양육할 목적으로 학교를 세웠던 것이다. 그러다가 1914년 안동선교부에 부임한 인노절 선교사는 보다 체계적이고 확대된 성경학교를 운영하게 되었다. 그 결과 여자성경학교는 1920년 4월 10일 남녀성경학교로 확대개편 되었다. 인노절 선교사가 1922년 별세한 뒤에는 그의 부인 캐더린 선교사의 노력으로 ‘성경학교(Bible Institute)’란 이름으로 새로 건축됐으며, 1925년 새로운 교사와 생활관 건물이 준공된 후에 ‘인노절기념성경학교’로 개명되었다. ▲1922년 인노절 선교사가 하늘나라에 간 후 부인 캐더린 선교사의 모금과 경안노히 교회들이 힘을 합해 1925년 준공한 인노절기념성경학교로 반지하 1층, 지상 1층 건물로 건축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는 강제로 학교가 폐쇄되었지만, 해방 후에 교장인 이원영 목사는 무너진 교회를 위한 인재를 양성하고자 1946년 9월, ‘경안고등성경학교’란 이름으로 다시 개교했고, 1962년 3월 ‘경안성서학원’으로 개명되었다가 ‘경안신학원’으로 다시 개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05년 3월 10일 개교한 경북 북부지역 유일한 대학원 대학교인 ‘경안신학대학원대학교’가 개교하게 되었는데, 여자성경학교가 경안신학대학원대학교의 모체가 되었던 것이다. 비록 경안신학원은 안동이라는 소도시에 위치했지만 한국교회에 끼친 거룩한 영향을 생각한다면 진정으로 큰 학교라고 할 수 있다. 이 학교에서 가르치고 공부하고 신학훈련을 받았던 사람 중에 한국교회의 지도급 인사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70회를 넘도록 배출한 경안신학원의 총 동문은 무려 2,000명 가까이 된다. 이들은 국내에서, 혹은 세계 열방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살아가고 있다. 바로 이 역사적인 경안고등성경학교에서 임학수 목사는 당시 소명과 사명에 불타는 신학생들을 가르쳤다. 당시 신학생들에게 임학수 목사는 사랑과 정성과 고매한 인격으로 제자들에게 본이 된 스승이었다. 신학생들은 임학수 목사의 강의를 통해 성경과 한문을 배웠을 뿐 아니라 인격과 목회를 배웠다. 그가 목회 실습과 같은 과목을 가르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강의에는 50여 년 넘는 동안 섬긴 열정과 사랑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임학수 목사의 제자들은 선지동산인 신학교에서 육신적으로는 노쇠했지만 영적으로 충만한 믿음의 선배요 스승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많은 제자들은 임학수 목사를 여전히 위대한 스승으로 흠모하고 있었다. 임학수 목사는 날마다 새벽에 가정예배를 드림으로 자녀·손들에게 신앙을 훈련시키고 전수(傳授)하는 일에도 게으르지 않았다. 손녀인 임순오 권사에 의하면 예배 시에는 항상 찬송가 58장인 ‘지난밤에 보호하사’를 불렀다는 것이다. 또한, 오래 참고 항상 부지런히 일하고 열심을 다해 주님을 섬기라는 조부의 말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신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칠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믿음의 후배를 양성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임학수 목사는 가족에게 인격과 신앙의 롤 모델과 같았다. 또한, 안동교회 후임자인 김광현 목사에게도 직·간접적으로 목회를 전수했을 가능성이 있다. 임학수 목사는 불편한 몸으로 노년을 보냈다. 그때 김광현 목사는 거의 매일 임학수 목사의 집을 방문해 문안하면서 임 목사가 좋아했던 바둑을 두었다고 한다. 두 분은 마치 부자관계처럼 사이좋게 지내면서 전임자와 후임자의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안동교회의 전임 담임목사와 후임자의 아름다운 관계는 이미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두 목사님은 만나 바둑도 두었겠지만 자연스럽게 교회와 성도들, 노회와 목회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을 것이다. 이때 안동교회 전임 담임자요 목회 선배, 그리고 인생 선배인 임학수 목사는 여러 면에서 직·간접적으로 조언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김광현 목사가 경안노회와 총회, 그리고 한국교회의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게 한 요인 중의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1969년 1월 7일, 임학수 목사는 85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경안노회는 임 목사의 공적을 인정하여 경안노회장(葬)으로 결정하였고, 그가 11년 동안 헌신한 안동교회에서 장례예식을 치르고 운구하여 안동교회 묘지에 안장되었다. ▲1969년 1월 안동교회 예배당 앞에서 진행된 임학수 목사의 장례식.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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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시기독연합회, ‘도마바위’에 대한 역사적 고찰 세미나 열어영주시기독교연합회(김정렬 목사) 주관 ‘도마바위(분처바위)에 대한 기독교 측면에서의 역사적 고찰’ 세미나가 지난 2월 19일 안정농협로컬푸드에서 열렸다. 이번 세미나는 영주시 평은면 왕유동에 위치한 도마바위에 대한 기독역사적 유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으로, 유우식 장로(한국고대사상연구소, 역사학회 회원, 여의도 순복음교회 장로)가 주제발표, 박선경 목사(영주 예섬교회)가 논찬을 했다. 윤재현 목사(내매교회)의 사회로 진행된 세미나는 주제발표와 논찬 후 질의·응답을 통해 토론이 이어졌으며, 참석자들은 세미나 후에 직접 현장을 답사했다. 유우식 장로는 “분처바위는 400년경 이 지역을 점령했던 고구려 호태왕이 기독교 신자였는데, 1세기에 안동과 영주지역에 기독교 복음을 전했던 사도 도마의 행적을 기념하기 위해 전행이라는 사람에게 조각하게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선경 목사는 “사도 도마가 경주에서 활동했으며 안동 영주 등지에서 기독교 복음을 전파했다고 주장하는 유우식 장로의 의견은 기독교역사 학계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분처바위가 사도 도마를 기념하는 유물이라는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고 주지했다. 사회자 윤재현 목사는 “경교의 한반도 전파설은 국내의 신학자 중에서도 의견이 둘로 나뉜다”며 “다만 이번 학술포럼을 계기로 도마바위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우병백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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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 - 안동시장신년사 권영세 안동시장 존경하는 시민여러분! 그리고 동료 공직자 여러분! 2019년 기해년(己亥年)새해가 밝았습니다. 또 다시 우리에게 새롭게 1년이 주어졌습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값진 기회입니다. 지난해 우리가 많은 노력과 열정을 불태우며 가꾸고, 다듬고, 이룩한 모든 일들을 이제, 새롭게 거듭날 수 있도록 만들어 더한층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민행복과 지역발전을 위한 많은 시책들을 구상하고 확정지었으며 산적한 현안사업을 해결해나가는 등 참 많은 일들을 해 냈습니다. 또한, 지역안전도가 전국 최고수준인 1등급, 정부합동평가 우수기관 선정 등 시민안전을 최우선시하면서 일 잘하는 조직으로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것은 10년 前 2,261억 원에 불과하던 ‘안동의 브랜드 가치’가 20배에 육박하는 4조 4,000억 원대에 이르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뤘다는 점입니다. 이는, 말없이 굳건히 일상을 지킨 우리 시민들과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정성과 헌신을 다한 동료 여러분의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 저는 한해를 새롭게 맞이하면서, 제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오로지 ‘시민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다짐은 잘 이행하고 있는지? 다수의 논리에 묻혀 버릴 수도 있는 소수의 권리는 얼마나 잘 지켜내고 있는지? 올 한해 시정은 어떤 방향으로 꾸려갈지? 등 수많은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조용히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바로, 일상에서 만난 우리 시민들입니다. ‘한글 배달교실’에서 만난 서복래 할머니는 ‘죽기 전에 춘향전을 다 읽어보는 것이 소원’이라며 ‘한글 배달교실’의 운영 연장을 바라셨고, 청년창업자 이선미 님은 ‘오고가게’ 번창을 기원하며, 여행자를 위한 전단지를 만들어 배부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조심스레 꺼냈습니다. 복덩이할머니라는 애칭으로 더 알려진 김화순 할머니는 ‘창조지역사업 덕분에 노인네들 밖에 볼 수 없던 달동네에서 청년들을 볼 수 있게 됐다.’며 연신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민이 중심인 시정은 시민의 작은 목소리도 크게 듣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우리 시민들의 이러한 소박한 꿈들이 현실에 잘 스며들 수 있도록 시정을 꾸려갈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2019년도 시정의 주요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3가지를 기저(基底)로 삼아 매진코자 합니다. 첫째, 두발 딛고 서있는 오늘의 터전 위에서 안동의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시정을 펼치겠습니다. 하지만, 녹록지 않은 나라와 지역 안팎 사정이 문제입니다. 경제성장률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고 지역 인구는 안정세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용증가세는 멈추어 버렸고 악화된 체감경기는 서민시름을 더욱 깊게 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은 ‘풍랑은 항상 능력 있는 항해자의 편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역량과 노력여하에 따라서 불확실한 미래의 바다는 오히려 우리들 앞에 찬란한 ‘블루오션(Blue Ocean)’으로 펼쳐질 것입니다. 더 이상 기다리거나 지체할 겨를이 없습니다. 핵심에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뜨거운 감자’였던 3대문화권 사업은 이제 ‘희망의 다른 이름’이여야 합니다. 희망이 현실화되고 우리의 것이 되려면 무엇보다 실천이 중요합니다. 올해는 598억 원을 투입하여 희망의 주춧돌 든든하게 놓아 내년 연말에는 ‘번영의 팡파르’ 힘차게 울릴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또한, 안동의 오늘과 내일을 고민하며 핵심과제 22건을 선정했습니다. 시민들이 고단한 일상 속에서 잠시나마 소확행(小確幸)의 기쁨 누릴 수 있도록 민생 100대 과제도 선정했습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힘차게 박차를 가해 시민만족도를 높이는 일입니다. 둘째, 원도심을 성장축으로 지역의 균형발전이 구현되도록 하겠습니다. 원도심의 위기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해결책은 지금 우리가 찾아야 합니다.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위기극복의 유전자! 즉, 거친 항해를 자주 성공시켜 온 역사적 경험이 있습니다. 새로운 변화와 도전에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도, 열정도 우리에겐 있습니다. 역사부지를 매개로 구현해 나아가고 전통시장과 연계해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원도심이 가진 고유성은 유지하되 활기참으로 빛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행정의 힘만으론 한계가 있습니다. 시민단체, 사회적 경제조직뿐 아니라 대학과의 협력 등 다양한 계층의 참여와 소통을 통해 방안을 강구하고 실행해 나갈 것입니다. 셋째, 전(全) 공무원을 홍보 요원화하고, 전(全) 시민을 홍보 대사화하여 안동의 가치를 정당하게 알리겠습니다. 홍보는 안동의 가치를 가장 정당하게 알릴 수 있는 최적의 수단입니다. 또한, 상품화를 위한 시작이자 과정이요 마지막 단계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상품은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 할지라도 그저 진열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설령, 진열품일지라도 이에 생기를 불어넣고, 빛을 발하게 하는 일련의 과정과 귀결(歸結)은 우리 공무원의 몫입니다. 가장 효과적이고 저비용 고효율의 홍보는 바로 사람입니다. 우리가 움직여야 합니다. 안동의 매력을 제대로 알릴 수 있는 힘! 결국, 그 힘이 안동으로 사람을 끌어 모으는 힘이기도 합니다. 지금부터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안동의 맛과 멋, 안동인의 삶과 사상, 안동상품의 가치, 문화재 등에 대한 설명과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을 비롯한 홍보능력을 두루 갖춘 인력양성의 정예화를 기할 것입니다. 이것은 ‘안동을 더욱 안동답게’ 구현해 나갈 수 있는 뒷심이자 동력입니다. 또한, 우리 안동의 무한한 가치상승이자 명성과 인지도를 차별화시킬 수 있는 전략이기도 합니다. 저는 앞서 언급한 3가지 기저(基底)가 서로 상승효과를 내며, 불꽃을 피울 수 있도록 행정력을 발휘하고, 중지(衆智)를 모을 것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아니 저의 욕심이자 바람이라 해도 좋습니다. 잘 되는 집안을 들여다보면 보통 3가지 소리가 들린다고 합니다. 바로, 가족들의 웃음소리, 아기 울음소리, 그리고 책 읽는 소리입니다. 저는 올해 우리시에서 듣고 싶은 소리가 3가지 있습니다. 박수소리, 파이팅 소리, 그리고 시끌벅적한 발자국소리입니다. 시민들에게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지원을 잘 해드려서 시민들이 칭찬하는 박수소리, 민·관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하면서 실마리를 찾고,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불사르는 힘찬 파이팅 소리, 안동의 멋과 향이 제대로 전파되어 주요 관광지에는 관광객이, 전통시장에는 구매 손님들로 오가는 시끌벅적한 발자국소리, 올해는 이 3가지 소리가 지역 곳곳에서 넘쳐나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이는, 시민모두가 집사광익의 자세를 견지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그래서 저는 올해의 신년화두를 ‘집사광익(集思廣益)’으로 정했습니다. 집사광익(集思廣益) “생각을 모아 이익을 더 한다.”는 뜻으로,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으면 더 큰 효과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 ➲ 민선7기의 실질적 시작인 기해년에는 미래세대를 위한 터전 마련과 지속가능한 안동발전을 위해 흩어진 민심과 정성을 한데모아 안동성장의 모멘텀으로 삼겠다는 표현 햇빛도 하나의 초점에 모아질 때 비로소 불꽃을 피울 수 있듯이, 우리시민과 의회와 우리시가 진정 하나 될 때, 바람은 현실이 되고 희망은 손에 닿습니다. 어제와 다른 사고로 머리와 가슴을 채우고, 어제와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꿈을 키우며, 어제와 다른 행동으로 지역발전에 매진합시다. 새로운 시간 속에 새로운 마음을 담아 역동적이고 더욱 찬란하게 빛날 안동의 내일을 다함께 만들어 갑시다. 우리 서민경제의 맥박이 쿵쿵 뛰고, 10년 번영의 기틀을 마련하는 한해를 만들어 냅시다. 쉽지 않을 그 길을 제가 앞장서 걷고 여러분과 함께 걷겠습니다. 오늘, 그 첫발을 여러분과 함께 힘차게 내딛습니다. 새해에는 황금돼지의 기운 가득 받아 여러분의 꿈이 일상에 조용히 스며들어 행복한 나날로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감사합니다. 2019년 새해아침 안동시장 권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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